에쿠니 가오리의 음식에 관한 에세이 모음 '부드러운 양배추'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만났다.


작가가 어떤 지방에 출장갈 때마다 가는 중국인이 하는 중국 음식점이 있었는데, 어느날 갔더니 그날을 마지막으로 가게 문을 닫는다고 했다는 것. 주인들이 상해로 돌아가기 때문인데 서운했지만 웃어달라는 주인의 요청에 같이 사진도 찍고 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좋아했는데 사라진 식당들이 참 많다. 대충 생각나는 것만 꼽아봐도


치뽈리나 (홍대) - 뇨끼가 참 맛있었는데.

이찌방 테리야끼 (홍대) - 특제 소스랑 불에 구운 그 느낌이 참 좋았는데... 대체할만한 식당을 못찾았다.

루꼴라 피제리야(=구 마지아노 피제리아) (역삼) - 가성비가 참 좋았던 이탈리안. 지금은 치폴라 로쏘가 이 포지션을 대체

발리 (이태원) - 인도네시아 음식을 하던 곳. 비슷한 음식이야 태국 음식점을 찾으면 되지만... 사떼는 아직 여기만큼 하는 곳 못 찾았다. 하는 곳 자체가 별로 없기도 하고.

프레시니스 버거 (체인) - 딴건 몰라도 네기미소 버거는 참 유니크하고 좋았음. 먹고싶다.

티포투 (종로) - 홍차 잘 하는 곳 찾기가 힘들어... ㅠㅠ

나마스테 (종로) - 편하게 가기 좋았는데. 없어진 덕분에 더 맛있는 타지마할을 발굴하게 됐지만... (그러나 타지마할조차 없어졌다는 후문)

얌차이나 (삼성) - 딤섬 맛있던 곳. 이제는 몽중헌을 대신 가는 중

단뽀뽀 (강남) - 치라시스시를 메인으로 하던 특이한 곳. 없어지고 신촌점만 남았는데 여기는 라멘이 메인이라... 가본적이 없다

산초메 라멘 (홍대) - 시오버터라면이 맛있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별로 가본적은 없지만... 그러고보니 어느새 국내 라멘집은 돈코츠 라멘이 주류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건 아니고.


사실 따지고 보면 '좋아했던 집'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자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처지는 못된다.

일단 자주 갈려면 가격대비 맛만 좋은게 아니라 절대적인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이 없어야 되고, 자주 가거나 가기 쉬운 동네에 있어야 되는 등 조건이 붙는다. 게다가 그 동네에 다른 맛집이 있으면 그나마도 분산되고.

게다가 식도락가로서 새로운 식당도 항상 도전하다 보니 왠만해선 '단골'이라고 할 만한 집은 잘 안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괜찮은 식당이 사라지는 만큼 새로운 식당이 계속 생겨나는 만큼, 정말 특별한 곳이 아닌 이상 그 포지션을 대체할만한 식당도 곧 발견되기 마련이다. 흠. 뭐 사실 냉정히 보자면 좋아하던 식당이 사라지는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지 특별히 아쉬워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이 허해지는 건 좋아하던 식당과의 그 마지막이 너무 황망하기 때문이다.

간만에 좋아하던 식당에 가봐야지~ 하고 가봤더니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와 있을 때.

'헐 설마 없어졌나? 어디 근처로 이전한건가?' 하고 황급히 검색을 해보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 특별한 얘기도 안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치 식당히 멀쩡히 있다는 것 처럼 네이버 지도에도 그대로 뜨고, 맛집 사이트에도 항목이 그대로 올라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는 업데이트한지 한참 된 홈페이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까지 있다.

마치 이 식당이 없어졌거나 말거나 관심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처럼.

(그렇게 관심 있는 사람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일까?)


이건 마치 친한 친구가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니까 학교에 없...는 것도 모잘라서 마치 모든 아이들이 그런 애가 없었다는 것 처럼 행동하고 있는듯한 그런 기분?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을 보다가 식당과 작별인사를 하는 상상을 했다.


------------------------------------ 이하 상상 -------------------------------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좋아하던 식당 C.

식당 블로그를 통해 '사정상 다음달 말 까지만 영업합니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분들을 위해 폐업 전까지 서비스로 디저트를 드립니다'라는 공지가 올라온다.

물론 공지를 그냥 놓칠수도 있지만 요행히도 친한 누가 보고 알려줘서 알게 된 상황!

아쉽지만 마지막이라니 놓칠 수 없지! 하고 지금까지 그곳에 같이 갔던 사람들과 연락해서 시간을 잡는다.

가서 평소에 즐겨 먹었던 메뉴들, 혹은 궁금했지만 기회가 안되서 먹어보지 못한 메뉴들을 잔뜩 시켜놓고 나눠먹으면서 이 식당에 얽힌 추억들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주인 아저씨와 식당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누고 다음에 무얼 하실 것인지도 물어보고.

블로그에 '아쉽지만 마지막이라네요'하고 글도 올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없어지기 전에 한번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손님에게도, 주인에게도.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좀 무리일 수는 있겠다.

오래 다녔던 이전 회사를 퇴사할 때를 생각하면... 헤어지는 마당에 뭔가를 요란스럽게 한다는 것도 참 낯뜨거운 일이라 그냥 조용히 챙겨서 사라지는게 예의겠다 싶은 마음도 들고.

식당이 없어질 정도면 이미 예전에 한창 갈 때의 그 맛이나 서비스는 망가진지 오래인 경우도 많을 것이다.

설령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와준다 해도 주인의 마음은 뿌듯함이 아니라 '그럴거면 안망하게 진작 좀 많이 와주지!'하는 마음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고.


흠흠. 역시 그냥 로맨틱한 상상일 수밖에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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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음식에 관한 만화나 글은 보고 있으면 즐겁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보고 있자면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이 생기는데, 세상에는 맛있는게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뭔가 의욕이 나는 느낌도 들어서 좋다.

심지어 주말 저녁에도 이런 기분을 느끼면 다음 한주가 맛있는 것을 먹을 기회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다음 한주의 다가옴이 즐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드러운 양배추는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지만 맘에 들어서 살 예정.

Posted by 백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