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30대 중반이고 약 15년 경력이 된 게임 프로그래머다. PC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 인생을 시작해서 지금은 모바일 게임 개발을 하고 있는데.


사실 내 게이머 인생의 전성기는 10대.. 그러니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라고 할 수 있다. 겜보이, 오락실을 거쳐 PC게임으로 이어진 이 시대에 게임을 가장 재밌게 했었다. 그 이후로도 게임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10대 때만큼 재밌진 않았고, 멀티플 혹은 온라인 게임에도 적응을 못했다.


아마 싱글 게임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지 모한 원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있는 것 같은데, 당시에는 PC방 열풍으로 디아블로, 레인보우 식스, 스타크래프트 같은 멀티플 게임이 활성화되던 시기였지만 나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데다가 원래부터 몰려다니면서 노는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그 열풍에서 완전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야자와 독서실을 다녀온 뒤 자기 전에 잠깐씩 혼자 즐기는 게임만 하다보니 온라인으로 넘어가질 못한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내 게임 취향은 20년 전에 멈춰있는 셈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정작 개발은 게임 시장에 맞춰서 온라인과 모바일만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불행한 개발자고 역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해야 됩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물론 자기가 하기에도 재밌는 게임을 개발하는게 좋긴 하지만, 개발의 재미와 게임을 하는 재미는 별개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웃게임이라는 플랫폼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인게임 플레이는 액션게임인 것들을 만들어서 내 취향도 많이 반영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게 개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취향과 시장의 괴리 때문에, 개발하면서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고민을 별로 안한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만들 수 없다..고 반쯤 포기했달까. 지금도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상업적으로는 딱 내 취향의 게임을 만들 수는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요즘 인디게임 열풍도 있고 한걸 보면 노후에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이 뭔지 한번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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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정말 재미있게 했고, 요즘 해도 재밌을 것 같은 게임을 리스팅 해보는 게 첫번째 순서일 것 같다.


- 록맨X 시리즈 (특히 4편)

- 포탈 1, 2

- PS2용 시노비

- 배트맨 아캄시티

- 미러스 엣지


빼먹은것도 많겠지만 일단 이정도로.


이 게임들에서 뽑아지는 공통점들을 생각해보면 이렇다 (모든 게임에 속하지 않는 것들도 있음)


- 어느정도 정해진 루트로 진행해서 엔딩을 보는 구성

- 플레이 타임이 너무 길지 않다

- 기본 조작이 꽤 코어하고 액션게임적임. 점프, 벽타기, 비행 등등.

- 공략법을 찾아서 파해하는 플레이

- 공략법을 찾기 위해 재시도하는데 패널티가 없고 (온라인 게임에서 잘못 키우면 망캐가 된다던가 이런 요소),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크다

- 스탯 성장은 없고, 대신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점점 늘어난다

- 할 수 있는 행동이 추가된 뒤에는 그 행동으로만 클리어할 수 있는 컨텐츠가 나온다


이정도가 아닐까 싶다.

- 플레이하면서 조작 숙련도를 키우고

- 캐릭터도 할 수 있는게 늘어나고

- 그걸로 반복적인 도전으로 파해법을 찾아내는

- 그걸 반복한 뒤에 엔딩이 궁극저인 보상으로 주어지는

이런 플레이가 내 이상적인 게임인 것 같다.


이렇게 뽑아놓고 보니, 엔딩 없이 주구장창 하는데다가 지속적인 능력치 성장을 목표로 하는, 혹은 PVP의 경우 시행착오에 큰 패널티를 물어야 되는 온라인 / 모바일 게임으로 내가 넘어가지 못한게 당연하다 싶기도...


언젠가는 이런 게임 좀 제대로 만들어봤으면 좋겠다. 마이티 No.9도 실패한걸 보면 쉬운 일은 아닐거 같기도 하지만!

Posted by 백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