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거리들/Book & Text2016. 7. 17. 22:52

아직 제대로 정리는 못했지만 요 몇달간 했던 두서없는 생각들을 남겨볼까 한다.


일단 발단은 트위터에서 본 어느 글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4인 미만 가족이라면 요리하는 것보다 사먹는게 더 싸다' 라는 것이었다. 이걸 시발점으로 내 경험과 읽은 책들로부터 나온 생각들.


일단 나는 2인 가족 (지금은 3인이지만 아직 아이는 밥을 안먹으므로)의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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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그 글을 봤을 때 든 생각은 '에이 그렇게 단정하기는 힘들지 않나?' 였다. 일반적으로 식당의 원가비율은 약 30% 정도라고 알고있다. 재료의 도 소매가에서 차이가 날 것이므로 높게 잡아 50%라고 쳐도, 만드는게 더 싸지 않을까?

물론 변수는 있다.

1. 재료가 상해서 버리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2. 요리하는 자신의 인건비를 포함시켰을 경우

3. 직접 만든 요리가 너무 맛이 없는 경우

그런데 2, 3번은 요리 실력을 쌓을수록 해결될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 적성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래서 반론을 쓸까 하다가, 미친 생각이 바로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3~4천원 정도면 괜찮은 한끼를 할 수 있는 도시락. 이거라면 확실히 직접 요리보다 더 쌀 수도 있겠다. 정도까지 생각하고 일단 반론 쓰기는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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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후에 요리를 하면서 다시 든 생각은, 사먹는 것과 요리하는 것은 서로 편리한 부분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택시와 자가용 같은 느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서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여러 트윗을 하나로 편집)


저녁에 요리를 하면서 다시 한번 요리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편의점 도시락이 3500원인데 나는 왜 직접 요리를 할까? 생각 끝에 내가 다다른 결론은 '요리 vs 사먹기' 가 '자가용 vs 택시' 구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맨날 택시 타고 다녀도 자가용 구입비+유지비보다 싸다는 얘기가 있다. 주행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일리있는 이야기인데, 게다가 택시는 피곤하게 직접 운전할 필요도 없고 주차 걱정도 없다. 그럼 자가용 구입은 비효율적 행위일까?


그런데 자가용 운전을 하다 보면 다른 부분이 보이게 된다. 일을 보는 동안 주차된 자가용에 짐을 보관할 수 있고, 남에게 침해당하지 않는 격리된 내 공간을 유지하며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택시와는 다른 편리함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운전에 익숙해질 수록 운전을 안해된다는 택시의 장점은 점점 줄어들고 택시기사와의 미묘한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즉 자가용과 택시는 서로 다른 장점이 있는데, 자가용의 장점은 운전에 익숙해질 수록 커지게 된다는 것.


비슷하게, 직접 요리하는 것은 귀찮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편리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내 취향에 맞는 조절, 다양한 메뉴 선택 등. 그리고 이 장점은 요리를 잘 할 수록 커지게 된다.


자가용 vs 택시와 마찬가지로 취향과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될 문제고 어느쪽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평일 점심을 제외하면 요리를 선택한 셈이고, 이쪽의 매리트를 점점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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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뒤에,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핵심은 회사에 매달리지 않고 내가 작게 할 수 있는 (= 벌이가 크지 않지만 시간도 많이 안드는) 일들을 여러개 해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 그 방법으로 일단 자기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지출을 줄이고 자급력을 높이다 보면, 그 일중에 자기가 특별히 잘 할 수 있는게 있고 그걸 남에게 해줘서 돈을 벌면 된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요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일단 위에서도 썼듯이 나는 누구나 요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쪽은 아니다. 요리의 비용이란 것은 사실 요리를 잘 하고 요리를 좋아할 수록 줄어드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커지는 거니까. 요리를 너무 못하겠거나 너무 하기 싫다면 사먹는게 낫다고 생각하고, 그런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사회가 더 좋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취향과 적성이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 사먹는게 더 싸니까 사먹겠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역시 위에서 말했듯이 '요리하는게 더 비싸다'는 주장에는 아마도 요리하는 사람의 인건비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시간을 인건비로 따진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지만 사람을 참 팍팍하게 만드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비슷한 케이스로 내가 예전에 다녔던 직장에서는 연말에 사용하지 않은 연차를 일봉으로 환산해서 돈으로 지급해줬다. 제도 자체는 좋은데, 문제는 쉬고 싶어서 연차를 쓰려고 할 때마다 이 하루짜리 휴식이 얼마짜리인지 계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연차를 내고 그냥 쉰 기억은 거의 없다.


거기에 더해서, 돈으로 처리하는게 저렴하게 먹히는건 돈으로 처리한다! 라는 사고방식. 즉 돈을 벌고 그걸로 아웃소싱하겠다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역시 때로는 자유를 많이 제약할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열심히 돈만 많이 벌고, 나머지 부분은 그 돈으로 해결한다! 라는 분업과 아웃소싱 전략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일에 지쳤을 때, 정말 탁 털고 자신을 쉬게 할 수 있을까? 아웃소싱화가 많이 된 생활은 기본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생활이 무거워지고, 거기에 매이게 될 수도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시간=돈 사고방식 아래에서는 당신이 연봉을 더 많이 받을수록 일 외의 다른것을 할 때의 비용이 점점 커지고, 당신은 점점 부자유스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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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가 지금 재밌기도 하지만, 약간은 내가 너무 쉬고 싶어졌을 때, 혹은 노후에 대비하는 느낌으로 하는 부분도 있다. 역시 최근에 읽은 책인 '2020 하류노인이 온다'는 책을 보고 노후의 불안정함에 대해서 걱정이 많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 저렴한 비용으로 내가 먹을 것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백수짓 하면서 쉴 때 가장 사람을 귀찮고 비참하게 하는게 바로 밥먹는 건데, 이걸 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점도. 혹은 가족에게 밥 해 먹이면서 전업주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든든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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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나는 왜 패스트 패션에 열광했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요즘 세상에서는 옷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서 입지 만들어 입지 않는다. 아마도 이거야말로 정말 '사는게 더 싸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분야일 것이다.


결국 어느 분야에서 극다적인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 개개인이 만드는 것보다 더 싸지고, 그럴 경우에는 이렇게 직접 만드는 것이 거의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편의점 도시락이 어느정도는 그런 형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만약에 당장 먹을 도시락을 중국에서 만들어올 방법이 열린다면 더 싸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옷을 사서 입는게 싸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품질'을 고려 대상에 넣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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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이 모든 생각이 것이 '가진자의 여유있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나는 요즘 야근을 많이 하지 않고, 꾸준히 요리를 직접 해먹을만한 시간적인 /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

수시로 야근을 해서 밤에 요리할 시간이 없고, 아침에도 조금이라도 더 자는 쪽을 선택해야 할 정도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면 결국 이 모든 논의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야근과 요리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건 나도 익히 체험한 바가 있다)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요리를 할 시간에 대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으로 '노동의 배신'과 '인간의 조건'이 있는데.. 읽어보면 조금 더 생각이 진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좀 더 많은 사람이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 그 상황에서 실제로 요리를 할 지 말지는 각자의 자유지만.

Posted by 백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