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2년 후 패밀리카 후보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때는 어차피 패밀리카로 쓸거 가성비 좋은 합리적 선택을 하자. 정도였기 때문에 그랜저 IG가 가장 가능성 높은 우선순위였습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싼 차는 아니죠. 가격대비 적당한 고급성 + 승차감 + 옵션 + 광활한 공간이 패밀리카로서 합리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뒤, '물건은 좋아하지만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라는 책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필요 없는 물건은 처분하고, 그만큼 물건을 살 때는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서 정말 좋아하고 애착이 갈 만한 것으로 사자. 즉 소지품의 소수정예화를 이룩하자 정도가 되겠습니다.



저도 한편으로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물건들이 쌓이는 것에, 그리고 의도화된 진부화에 의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사면서 돈을 쓰게 되는 것에 질력이 나던 터라, 많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차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꿨습니다.

원래 지금 타고 있는 x1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바꾸자고 생각하니 애착이 많이 가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 더 타다 2년쯤 뒤에 바꾸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애착이 많이 가서'라는 부분이 아닐까? 그에 비하면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정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물건중에 '편리하다'가 아니라 '애착이 간다'는 물건은 정말 몇개 없고 그 중 하나가 x1입니다. 차덕이라서 모든 차에 애착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내 차로 쓰는 i30는 용도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저도 아내도 큰 애착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i30의 경우 '합리성'만으로 선택한 것이기에 그런 것이겠죠. x1의 경우 수입차 옵션이 황폐하던 시절에 나온 차라 최신 옵션은 거의 없고, 후륜 기반의 롱노즈 디자인이라 실내도 좁고, 디젤이라 시끄럽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이 비합리성을 못이기고 후속 기종에서는 컨셉도 바뀌었죠.

x1은 '그래서'라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차입니다. 롱노즈에 낮게 깔리는 디자인은 지금봐도 딱 제 취향. 7년 전에 나온 차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구요. 승차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 빼면 주행 질감도 전혀 불만 없습니다. 6단 기어는 요즘 8단 기어처럼 매끄럽거나 연비가 좋지는 않지만 패들시프트로 시프트 다운 하면서 부앙 밟아주는 맛이 좋구요. BMW가 아직 유압식 스티어링을 사용하던 시절에 나온 차이기도 하죠. 파노라마 선루프는 닫으면 얇은 직물 블라인드가 아니라 두툼한 패널로 닫힙니다. 왠만한 고급차에서도 찾기 힘든 사양이죠. (세단에서는 구조상 거의 불가능하구요)

스마트키도 없지만, 리모컨으로 열고 닫을때 들리는 철컥! 하는 기계식 사운드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습니다.

희소성이야 말할것도 없죠. 수입차 중에서도 안팔린 편이니까요. 이제 단종되었으니 더 희소해질 일은 있어도 흔해질 일은 없죠.



아무튼 그래서, 아내와 이야기한 끝에 2년 뒤에 차를 바꾼다고 한정하지 말고, x1만큼이나 애착이 가고 오래오래 탈 수 있는 다음 차를 찾을 때까지 아끼면서 타기로 했습니다.

그게 2년 뒤가 될지 더 뒤가 될지, 혹은 더 빨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더 늦게 차를 바꾸게 되면 그만큼 아낀 비용으로 인해 선택 범위가 더 넓어지긴 하겠죠.

마침 얼마 전 아내가 x1을 직접 운전하고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다녀온지라 더 애착이 가네요.


물론 이 판단에는 제가 차덕이란 부분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덕질하는 분야까지 가격대 성능비와 실용성 기준으로 합리적인 선택만 하는건 좀 아닌것 같아서요.



일단 그래서, '딱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가성비 좋은'차들은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K9 중고라던가 7시리즈 중고가 엄청난 감가로 가성비가 좋다던데.. 같은 생각을 했던 적도 있지만 이런것도 다 패스. 제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진다면 아무리 싸게 잘 샀다 해도 애착을 갖기 힘들거라는건 뻔하니 말이죠.


그랜저는 나와봐야 알긴 하겠지만, 아마도 패스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랜저는 너무 잘 팔리는 차거든요.

어렸을때부터 마이너 취향이라 애착을 가지려면 희소성 가치도 중요합니다. (중고차 비싸게 팔기는 글렀군요)

반면 가능성이 약간 남아있는 부분은 색상입니다. 제네시스 G80 까만색은 제게 맞는 느낌이 아니지만, 파란색은 가끔 보면 아 멋있다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식으로 독특한 취향을 뽐낼 수 있는 멋진 선택지가 있다면 생각해볼 일이죠.


아 그러고 보니 G80 스포츠도 좀 관심이 가네요. 가격과 성능에 따라서는 혹할만한 후보일 것 같습니다. 다만 너무 스포츠성을 따라가다가 승차감이 많이 훼손되면 곤란하겠죠.


K5 왜건은 출시만 해준다면 여전히 관심이 가는 후보입니다. 왜건에 대한 로망이 있거든요.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어서 더 좋죠. 선택지도 너무 없는건 좀 아쉬운 점이지만.


현재 가장 로망으로 관심이 가는 차는 V90입니다. 멋진 디자인 + 왜건!

다만 100% 딱 이거다 싶은건 아니고 아쉬운 점이 있긴 합니다.

(S90보다 4~500정도 비쌀거라고 예상하면) 너무 비싼 가격, 4기통 디젤 혹은 (고급유를 넣어야 하는) 터보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점, 전륜구동 버전도 센터터널이 높아서 뒤에 3인이 타기 어려운 점 등.


제네시스 SUV도 여전히 관심이 가는 후보구요.


아무튼 차를 사는게 늦춰질 수록 선택지는 더 늘어나겠죠. 차덕은 이래저래 즐겁습니다. 그 때까지 계속 x1을 아껴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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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관심이 가는 V90의 프리뷰 격으로 S90을 구경하러, 아내 / 아이와 외출한 김에 잠시 볼보 매장에 들렀습니다.

가까운 송파 매장이었는데, 아직 매장을 짓는 중이라 임시 매장을 운영중이더군요. 그것도 S90은 전시차가 없고 시승차밖에 없는데 누가 시승중이라 구경 실패. 지하 주차장에 대기중인 XC90만 잠시 구경했습니다.


일단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모니터 화려하니 좋고, 인테리어 품질 좋구요. 가죽은 보들보들하고 나무는 제가 좋아하는 진짜 나무 질감의 나무네요.

당당한 외관 디자인도 좋구요.


반면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는데요. 디젤 모델이었는데, 문 닫으면 조용하지만 헤드레스트와 스티어링 휠로 미세한 진동은 전해집니다. 제 차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9000만원짜리 차에 기대하는 수준은 아니네요. 4기통 2리터 디젤의 한계인 듯.


또 한가지 충격적이었던건, 볼보 시트 편하다고 하도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전 불편했습니다. 허벅지 아래 부분에 뭐가 걸리적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익스텐디드 시트 연결되는 부분때문인 것 같더군요. 이건 제가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시트 조절을 안해봐서 그런걸수도 있는데, 익스텐디드 시트를 조절하는 걸로는 해결이 안됐습니다.

다들 편하다는데 저만 불편해서 저도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나중에 S90 구경하게 되면 다시 한번 봐야 될듯.


2열도 엄청 아늑하다 느낌은 아니고 걍 무난하네요. 3개 독립식 시트라서 그런가봅니다.


음악도 들어볼 수 있었음 좋았을텐데 못들어봐서 조금 아쉬웠구요. 놀랍게도 얘도 CD 투입구가 없다는군요. 대중차에서 빼는건 이해하지만 EQ900도 그렇고 XC90도 그렇고 프리미엄 차량들에서 너무 성급하게 빼는건 아닌지.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스티어링 휠 위치 조절 (틸트/텔레스코픽)이 수동이라는 점.



어차피 제가 관심 있는건 XC90이 아니라 V90이니 나중에 다시 보긴 해야겠습니다만, 조금 아쉬운 느낌의 구경이었습니다. 좋은 부분은 되게 좋은데 의외로 좀 아쉬운 부분이 있네. 이 정도의 느낌이었네요.


11~12월쯤에 송파 매장을 꽤 크게 오픈할 모양이던데 그때쯤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백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