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도 일주일.
지난 연애에 대한 글을 써본다. 조만간 비공개 처리할 가능성이 크지만.
연애가 끝난 뒤, 그에 대한 생각은 진작에 정리했다.
그러나 지나고 지나도 나를 괴롭게 한건 이별 몇달, 며칠 전의 기억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기억의 시점과 이별 후에 대한 극단적인 괴리감. 그 극단적인 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통속적인 대사지만 '어떻게 그랬던 니가...' 정도겠지.
어제 팀 사람들하고 영화를 봤다. My Sister's Keeper. 죽음에 관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결국 죽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죽음. 살아서 웃고, 이야기하고, 추억을 만들었던 사람이 그냥 무생물로 변해버리는 그 극단적인 변화를 사람이 이해할 수가 있을리 없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 뒤에 - 삶과 continuous한 그래프를 그리는 - 어떤 사후 세계 혹은 비슷한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걸 기반으로 종교를 만들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본질이다.
죽음의 거대한 두려움을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내 취향은 아니다. 라플라스가 말했듯이 나에게 신이라는 가설은 필요하지 않다.
사랑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이게 내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심플하고 논리적 모순이 없는 명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서 연애에 사후세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드는 생각은
그 사람이 이별을 말했을 때, 그때와 다르게 반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야 이 XX년아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한게 얼마큼인데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고 버럭 화를 내거나
'난 너만 있으면 돼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떠나지만 말아줘...'
하고 붙잡거나.
그렇게 할걸 하고 후회하는게 아니라 그랬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만.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게 나의 장점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게 나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지난 연애에 대한 글을 써본다. 조만간 비공개 처리할 가능성이 크지만.
연애가 끝난 뒤, 그에 대한 생각은 진작에 정리했다.
그러나 지나고 지나도 나를 괴롭게 한건 이별 몇달, 며칠 전의 기억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기억의 시점과 이별 후에 대한 극단적인 괴리감. 그 극단적인 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통속적인 대사지만 '어떻게 그랬던 니가...' 정도겠지.
어제 팀 사람들하고 영화를 봤다. My Sister's Keeper. 죽음에 관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결국 죽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죽음. 살아서 웃고, 이야기하고, 추억을 만들었던 사람이 그냥 무생물로 변해버리는 그 극단적인 변화를 사람이 이해할 수가 있을리 없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 뒤에 - 삶과 continuous한 그래프를 그리는 - 어떤 사후 세계 혹은 비슷한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걸 기반으로 종교를 만들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본질이다.
죽음의 거대한 두려움을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내 취향은 아니다. 라플라스가 말했듯이 나에게 신이라는 가설은 필요하지 않다.
사랑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이게 내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심플하고 논리적 모순이 없는 명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서 연애에 사후세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드는 생각은
그 사람이 이별을 말했을 때, 그때와 다르게 반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야 이 XX년아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한게 얼마큼인데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고 버럭 화를 내거나
'난 너만 있으면 돼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떠나지만 말아줘...'
하고 붙잡거나.
그렇게 할걸 하고 후회하는게 아니라 그랬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만.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게 나의 장점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게 나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