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잡담/잡담2010. 4. 15. 10:03

요 며칠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몇몇 사람의 트위팅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험이 꽤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특별히 잘못을 했다고 보기도 묘한지라, 이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만 있는 불편함의 정체는 뭘까. 하고 한참을 고민해본 바... 그 정체를 알게 된 듯 하여 생각을 정리해본다.

한줄로 정리하자면 '블로그 + 게시판 + 싸이월드'의 구조를 가진 트위터의 특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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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는 이른바 '게시판 매너'라는 것이 있다.

비슷한 내용의 글을 연달아 쓰면 '도배'라고 욕을 먹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글을 계속 올려도 (이른바 꾸준글) '얘는 허구언날 이 소리냐'라면서 지탄을 받는다. 어떤 게시판에는 분쟁의 씨앗이 된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치성향이나 종교성향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즉 '게시판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용하면 안된다'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것이다.


반면 블로그에는, (이른바 광역 떡밥을 던질 수는 있겠지만) 이런식의 제약이 없다.
게시판에서 좌파를 까던 페이트 덕질로 도배를 하던 기본적으로 자기 마음이다.

블로그에는 기본적으로 '여기는 내 공간이니 싫으면 오지 마라'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반면 트위터는? 글을 쓰는 사람은 블로그처럼 '자신의 개인 공간에' 글을 쓰지만,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게시판과 비슷한' 형식으로 보게 된다.

사람이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저녁 8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기 아주 적합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트위터의 다음과 같은 특징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 글 제목을 클릭해서 보는게 아니라 글 내용 전체가 올라온다 : 제목으로 한번 걸러보는 필터 과정이 없다.
- 단문 위주이므로 블로그나 게시판에 쓸 것과 같은 분량의 내용을 써도 도배처럼 되기 쉽다.
- RT라는, 자신의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글을 양산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 있다.

이런 최악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의 트위터 타임라인이 DC게시판처럼 엉망이 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팔로우한 사람의 글만 본다는 1차 필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음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맘에 안드는 글을 올리는 사람은 언팔로우 하면 된다. 간단하군.

but 그러나. 트위터는 싸이월드적인 성격도 같이 갖고 있다. 그 말 많은 SNS라는 것 말이다.

즉, 많은 경우 트위터의 팔로잉은 '음 이 사람은 나랑 생각도 비슷하고 트위팅도 아주 적절한 내용을 적절한 형식에 맞춰서 하는군' 해서 일어나는게 아니라 '그냥 친한 사람이니까' 하게 된다.

'친한 사람이니까' 팔로우했던 사람을 언팔로우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게 되는지는 뻔한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결과적으로, 친한 사람이 RT까지 동원해서 도배질을 시작하면 이건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 되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고민해보고 둘중 하나를 실행할 예정이다.
1. (나는 당신이 싫진 않지만 당신의 트위팅 방식은 싫군요 라는 메시지를 담아) 과감히 몇몇 사람들을 언팔로우하거나
2. 트위터를 그만두거나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지만 2번도 뭐 나쁘지 않겠다 싶다. 없이도 잘 살았는데 뭘.
Posted by 백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