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거리들/Book & Text2010. 12. 30. 22:45

독후감 쓰는게 얼마만이야.

아무튼 오늘 올해의 마지막 독서를 끝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예전에 어디선가 반값 할인할때 샀던 기억인데. 책장에 한참 꽂혀있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6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무슨 장르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추리소설? 대체로 '모방범'과 비슷한, 현실적인 느낌의 범죄를 다룬 소설이지만 긴박한 느낌의 모방범과 달리 이미 끝난 일을 취재하는 르포 형식으로(물론 가상이다)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따라서 범죄를 다룬 소설이지만 명탐정도, '범인은 이 안에 있다!'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고립됐어!'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핵심은 범인과 트릭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범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는가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묘사하는 점이 정말... 뭐랄까. 미야베 미유키가 아니면 할 수 없을듯한 작업이다.

정말 지나가는 인물 한명도 이야기 진행을 위한 소도구로서 남겨두지 않는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한 설정을 부여하고 묘사한다. 그렇게 별거 없다면 별거 없는 내용과 묘사의 연속인데도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모든 인물들이 입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적인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이 정말로 그럴듯한 인물들.

보면서 스티븐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생각났다. 이 소설 역시 기본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인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려고 수상한 짓을 했다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는 내용. 그런데 이 소설의 대부분은 어리석은 짓을 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부분에 있지 않다. 주인공이 아주 사리 분별이 바르고 현명한 사람임에도, 충분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런 바보같은 선택을 하도록 심리적으로 옥죄어드는 과정을 정말 느릿느릿하고 집요하고 끈적끈적하게 묘사한다. 아마 이런 과정이 없었으면 감정이입도 공포도 없었을 것이다.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리얼리티를 위해 공을 들인 미야베 미유키의 '성실함'이었다. 실로 장인의 솜씨라 할 만하다.

올해의 마지막 독서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Posted by 백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