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쓰려고 했던 글인데 계속 미루다가 오토뷰 리뷰를 계기로 써봄.



해외에서 공개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지난 2월 말 국내에도 2세대 X1이 출시됨으로서 내 차는 완전히 구형이 되어버렸다.


해외 기준으로는 1세대가 2009년, 2세대가 2015년 출시되었으니 대략 6년 정도만에 풀체인지된 셈인데, 메이커마다 다르지만 요즘은 풀체인지 시기가 7년 정도에서 6년 정도로 짧아지는 성향이 있으니 그렇게 빠른 교체는 아닌 셈이다. 나는 2011년 9월에 구입했으니 약 4.5년을 신차로 탄 셈이라 이것도 짧다고 볼 수는 없고.


1세대 X1은 독특한 포지션의 차인데, BMW의 세단과 SUV라인을 대략 표를 그릴 경우

SUV                  (X1)           X3         X5


세단         1시리즈      3시리즈     5시리즈    7시리즈

이렇게 될 것이다. 즉 크기나 가격적인 면에서 X3는 3시리즈와 5시리즈의 사이에, X5의는 5시리즈와 7시리즈의 사이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같은 원리애 의해 위의 표와 같이 X1은 1시리즈와 3시리즈의 사이 가격이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

그렇지 않다. X1은 3시리즈보다 비싸고, X3보다는 싼 가격으로 나왔다. 실제로 1시리즈가 아닌 3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가 1세대 X1이었다.


즉 표로 그리자면

SUV                                  X3         X5

                                 X1

세단         1시리즈      3시리즈     5시리즈    7시리즈

이런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20d 기준으로 할 때 X3와 X1의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차의 크기와 급을 중시하는 국내에서는 X1이 잘 팔리지 않는 현상이 생겼다. 나는 취향 + 할인액의 차이로 X1을 선택했지만.


물론 가격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대체 이 차는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한 사람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세단과 SUV의 중간적인 높이에 긴 보닛으로 인해 실내 공간은 좁다. (구형 3시리즈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국산차로 비교하자면 탑승 공간은 i30와 비슷하다)


대체 이 차는 정체가 무엇인가? 공식적으로야 크로스오버형 SUV지만, 이 차의 스타일에 반해서 구매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가 정의내린 이 차의 정체는 바로 '쿠페형 소형 SUV'이다.

그렇기 때문에 SUV 치고는 낮고 날렵한 차체를 가졌으며, 공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후륜 기반에, 긴 보닛으로 주행성능과 스타일을 살린 것이다. 이 차의 단점은 그로 인한 희생이다.


공식적으로 쿠페형 SUV의 장르를 연 X6와 1세대 X1의 사이드뷰이다. 뚱뚱해보이는 X6보다 긴 보닛 비율을 가진 X1이 더 날렵하고 스포티해 보인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도 나름의 근거는 있는 주장이긴 하다. 이건 아래에 다시.



아무튼 BMW는 후륜 기반의 크로스오버이던 X1의 특징을 버리고, 액티브 투어러 혹은 클럽맨과 공유하는 전륜 플랫폼으로 2세대 X1을 만들었다. 그래서 길이는 약간 짧아졌지만 SUV답게 높이는 더 높아졌고, 전륜 베이스 답게 실내 공간은 더 넓어졌다.



그래서 사이드뷰는 이렇게 변했다.


외형은 나쁘지 않다. (헤드램프 앞트임 안한게 어딘가!) 나처럼 특이한 취향의 사람이 아니면 듬직한 SUV 느낌의 2세대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그러면 전륜 베이스로 바꾼 BMW의 선택은 옳았을까?

이거야 뭐 나중에 판매량 나와봐야 알겠지만, 나로선 그리 반갑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1세대 X1의 오너로서는 매우 반갑다. 왜냐하면 신형이 나왔지만 별로 박탈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형이 더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카테고리의 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1세대 X1은 가성비가 좋지 않은 차고, 그 이후로 더 가성비 좋은 차들 (CTS라던가 MKX라던가)이 나와서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후속 기종이 더 좋게 나와서 내 차가 구닥다리가 되는 박탈감과는 다르다.


반면 평범한 차덕 중 한명으로서는 매우 아쉽다. 독특한 개성이 있던 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1세대 X1과 비슷한 포지션의 차는 인피니티 QX50 (구 EX) 정도밖에 없다. (아우디 올로드나 V60CC같은 전륜 기반 크로스오버는 엄밀히 말해 같은 카테고리는 아니라고 본다) QX50도 사골을 신나게 끓이는 중이라 후속 모델이 언제 어떻게 나올런지도 미지수고.



X1에 대한 몇가지 의문점은 이렇다. 분명 더 실용적이고, 넓어진 것은 맞다고 치자. 그럼 이 카테고리의 베스트셀러 티구안이 아닌 더 비싼 X1을 사야 될 이유는 뭘까? 썩어도 준치라고 전륜이어도 BMW니까? 흠 글쎄. 게다가 실용성으로 넘어가면 애초에 국산차의 상대가 될 수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있나? 3천만원짜리 싼타페와 쏘렌토가 얼마나 넓은데?


또 한가지는 가격과 패키징이다. 아주 예전 X1이 전륜 기반으로 나온다고 할 때,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아가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즉 1시리즈와 3시리즈의 중간급, 중간 가격으로. 소형 SUV급도 유행이고 하니, 그렇게 아래 시장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했다. 그런데 두껑을 열어보니 왠걸, 4천만원대의 18d 등급은 아예 삭제하고, 20d 기본 모델도 가격을 올려버렸다. (물론 옵션은 좋아지긴 했을 것이다) 23d (FL후에는 25d) 모델도 사라져서 최고가도 낮아졌지만.

흠 대체 3시리즈보다 더 비싸게 주고 전륜구동 기반의 BMW를 사야 될 이유가 뭐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건 더 저렴한 3시리즈가 존재하는 이상, 1시리즈 차기작이 전륜으로 나오는 것과는 완전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반면 국내 미디어 (웹사이트, 잡지)들의 생각은 나와 전혀 다른 듯 했다.

다들 이전 X1을 'SUV인지 웨건인지 알 수 없는' '시험적인 실패작'으로 규정하고, '소형 SUV에는 전륜이 더 적합한 선택'이라고 하고, '전륜임에도 BMW의 드라이빙 감성이 살아있다'고 했다. (모터 트렌드가 그나마 '전륜구동의 한계는 있지만 괜찮은 주행감각'이라고 평한 정도)


애초에 크로스오버로 나온 차를 SUV처럼 안생겼다고 까는 건 뭐 별로 말할 가치가 없다.


전 세대 X1을 실패작으로 규정하는 것도 말도 안되는 소리다.

X1은 출시된 지 한참 된 2013년에서도 독일 SUV 판매 순위에서 4위를 찍엇다. BMW의 SUV중에서는 가장 많은 판매량.

(출처는 http://humandrama.tistory.com/1080)

국내 모 매거진에서는 X시리즈중 X1이 가장 인기가 없었다는 망언까지 했는데 당연히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야 그랬을지 모르지. 근데 BMW가 한국에서 X1이 잘 안팔려서 전륜구동으로 바꿨을까?


그리고 주행감각. 전륜인데 후륜 못지 않다고? 그럼 X3부터 X5까지 다 전륜 기반으로 바꿔도 되겠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내가 운전해보지 않았으니 잘 만들긴 했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오토뷰의 리뷰가 나오기 전까지는.

http://www.autoview.co.kr/content/article.asp?num_code=58192&news_section=car_ride&pageshow=1


요약하자면 넓어진거 말고는 전 세대가 더 낫다. 정도 되겠다. 구 유저의 구형부심을 살려주는 리뷰랄까...



아무튼 왜 이렇게 X1을 평범하게 만들어버린거지? 가 나의 불만인데,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는 답이 있다.

바로 X1의 쿠페형, X2의 스파이샷이다.

스파이샷이라 불확실한 부분이 좀 있지만, 2세대 X1에 비해서 낮게 깔린 형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건 마치... 보닛이 짧다 뿐이지 1세대 X1하고 비슷하지 않은가? 게다가 X4, X6처럼 엉덩이를 깎은 모습도 아니고 말이다.


즉 BMW는 기존 크로스오버 X1을 X2로 재 포지셔닝하고, X1에는 보통 SUV를 새로 포지셔닝해서 두마리 토끼를 다 잡고자 한게 아닐까? 하는게 나의 추측이다. 그리고 이게 1세대 X1이 쿠페형 SUV라고 말할 수 있는 내 근거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여전하다. X2는 1세대 X1과 비슷할 것이지만, 쿠페형이라는 컨셉에서는 전륜구동 베이스라는게 더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형보다 비싸진 X1에 비해 더 비싸질게 뻔한 X2의 가격이 어떨지도 문제고. (설마 전륜구동 기반 BMW를 6천만원 주고 사라고?)



아무튼 2세대 X1의 행보는 아쉽지만, 구형 오너로서는 좋기도 하다. 내 차의 개성이 더 강해진 셈이고, 이제 새로 출고도 되지 않아 희소성도 더 높아질테니.


1세대 X1은 애착도 가는 차고, 디자인도 여전히 마음에 들고, 특히 사이드뷰는 지금 봐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비록 요즘 차들에 비하면 옵션이야 황폐하지만 이 차를 타면서 남편이 되고 아빠도 되었으니 애착을 갖고 최소한 5년은 더 타 볼 예정이다.

Posted by 백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