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포스팅에서 이어지는 자기 고찰 시리즈.
요즘 자신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 만약 게임의 HP처럼 인간의 욕구를 최대치가 정해져있는 게이지 형태라고 보고 그걸 꽉 채우는 걸 만족이라고 본다면, 내 욕구는 최대치가 꽤 낮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나 자신을 관찰하면서 느낀 사실은, 대부분의 일을 '효율성이 괜찮은 시점까지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모든 것들은 투자대비 결과의 그래프가 곡선으로 올라가서, 7~80%정도까지를 얻는데는 비용이 크게 들지 않지만 거기서부터 90%까지 갈려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들고, 또 95%까지 갈려면 훨씬 더 큰 비용이 들고.. 이런 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대개 투자대비 효율이 좋은 7~80%에서 '이정도면 됐어'하고 멈추는 성향이랄까.
그래서 뭔가 취미 생활에도 '끝까지 파는' 혹은 '돈을 때려박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이유를 지금까지 나는 '그 이상 노력하기는 귀찮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귀찮은게 많으니 게으른 사람인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는게 나 자신에 대한 딜레마 중 하나였었다. (일반적으로 주위의 평가로는 성실한 쪽에 더 가깝다)
나는 성실한 동시에 게으른 사람인가? 물론 누구나 그런 이중적인 면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걸로 설명하기엔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또 나 자신을 관찰하면서 알게 된 특징 하나는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재밌는 영화를 본다고 할 때, 100분 정도가 넘어가면 아무리 재밌더라도 '이제 좀 끝났으면'하는 마음이 생긴다. 공연도 마찬가지. 즉 아무리 체험이 재밌고, 즐겁다 하더라도 '이 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하는 생각 보다는 '이렇게 즐거운 상태로 이만 끝났으면 좋겠다'는 쪽에 더 가까운 마음이 든다. 여행도 마찬가지라서 즐거운 여행이라도 약 7~8일 정도 되면 이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들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매사에 빨리 질리는' 사람인가? 하면 이것 역시 그렇지는 않다는게 또 하나의 딜레마였다.
그런데 이번에 그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답을 찾은 것 같다. 나는 '욕구의 최대치가 낮은' 사람이구나.
이걸로 모호했던 부분들도 어느 정도 해명이 된다.
내가 굳이 무언가를 '파서' 100%까지 도달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는 그걸 통해서 내가 원하는 즐거움의 크기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그렇게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욕구가 충족됨을 아는데 비효율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다시 말해서 어떤 취미를 파고 싶으면 '그걸 하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욕구가 먼저 있어야 되는데.. 음... 초중학교때 게임 하던거 이후로는 그정도 욕구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즐거운 경험을 할 때 어느정도 지나면 '이제 끝나기를' 바라는 것도, 나의 욕구가 빨리 충족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욕구가 이미 충족된 상황에서는 뭔가 실망해서 좋지 않은 뒷맛을 남기는 가능성보다는 좋은 시점에서 끝나주는게 더 좋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는 것 같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내가 살이 안찌는 이유도 어느정도 배가 불렀을 때 '이정도면 됐다'하고 만족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성실하게 제시간에 자는 것도 굳이 다음날에 수면부족으로 인한 불쾌감을 남기면서까지 무언가를 해서 즐거움을 얻고 싶은 욕구가 적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가? 하면.. 역시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것 같다.
단점이라면 뭔가 강한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찐-한 쾌감을 느낀지 좀 오래 됐다는 것. 차를 사고 나서 너무 기뻐서 차에서 잤다거나 (나는 차덕이지만 차를 샀을 때도 이정도로 기쁘진 않았다) 낚시가 가고 싶어서 좀이 쑤신다거나... 뭐 이런 종류의 얘기를 들으면 좀 부럽기도 하다.
장점은 욕구가 크지 않다보니 대체로 다 만족하면서 산다는 것. 게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다들 희생하는게 많다고 하는데, 물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기야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데 가족때문에 희생해야 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육아는 미래의 일이니 겪어봐야 알지만)
뭔가 강력한 욕구가 없는 만큼 일상을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나가는게 나에게 맞는 전략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일단 회사에서 일하는게 괴롭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아니 어쩌면 회사 일이 괴로웠다면 취미로 그걸 풀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생겼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